ALL OR NOTHING

* 양산보가 지은 조선시대 별서정원, 소쇄원 *


소쇄원은 양산보(梁山甫, 1503∼1557)가 은사인 정암 조광조(趙光祖,1482∼1519)가 기묘사화로 능주로 유배되어 세상을 떠나게 되자 출세에의 뜻을 버리고 자연 속에서 숨어 살기 위하여 꾸민 별서정원(別墅庭園)이다. 주거와의 관계에서 볼 때에는 하나의 후원(後園)이며, 공간구성과 기능면에서 볼 때에는 입구에 전개된 전원(前園)과 계류를 중심으로 하는 계원(溪園) 그리고 내당(內堂)인 제월당(霽月堂)을 중심으로 하는 내원(內園)으로 되어 있다.


소쇄원 입구에서 매표를 하고 걸으면

만나지게되는 울창한 대숲

한여름의 푸르름이 절정인것 같다.

 

광풍각과 뒤로 보이는 제월당

광풍각(光風閣)은

"비갠뒤 해가 뜨며 부는 청량한 바람"이라는 뜻의

손님을 위한 사랑방이고

제월당(霽月堂)은

"비개인 하늘의 상쾌한 달"이라는 뜻의

주인을 위한 집이라한다.


대봉대에서 바라본 광풍각

소박한듯 꾸밈없이 있는 그대로의 자연환경

소쇄원에서 느끼게 되는 고즈넉함

아무래도 이런매력에 다시 찾게되는지도 모르겠다.


소쇄원을 가로질러 흐르는 작은 계곡

소쇄원은 계곡과 주변의 지형을 손상하지 않고

조성되었다 한다.

이 계곡이 있어 더욱 맑고 깨끗하고 시원하였고

흐르는 물소리도 청아하게 들렸다.


소쇄원의 배롱나무에서도

예쁘게 꽃을 피우고 있었다.


흐르는 계곡의 물길을 막지않고

쌓아올려진 돌담장


세월의 무게를 견뎌온 바위들


제월당의 낯설지않은 정겨운 모습

그대로이다.


제월당 앞뜰에서 내려다 보이는 풍경

왠지 시한수 지어 읊어야만 할것 같은 기분


돌담장 너머로 보이는 제월당

관광객들이 잠시 머물다 간다.

물론 나도 앉아서 눈아래 펼쳐진 풍광을

선비가 된듯한 시선으로 한참을 내려다 보았다.


제월당과 광풍각으로 통하는 협문

누군가 먼저 양보를 해야만 통과할 수 있고

머리를 조아려야만 지나갈 수 있을 정도로

높이가 낮고 폭이 좁다.

.

협문을 내려와 계단쪽에서 보여지는

다른각도의 광풍각

담장도 계단따라 그 높이를 달리하여

시선이 막히지 않아 어디서든 잘 보인다.


광풍각앞을 가로질러 흐르는 계곡

끊임없이 파장을 일으키며 여름햇살이

반사되 눈이부셨다.


광풍각옆으로 울창한 대숲이 있다.

작년엔 대숲사이를 걸었는데

지금은 울타리가 둘러져 있어서 

이젠 눈과 귀로만 감상을 해야한다.


광풍각옆에서 올려다 본 제월당


담벼락사이로 자란 나무를 배려한듯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간직하며

어우러지게 쌍아올린 담장을 보더라도

자연친화적인 정원임을 알게한다.


소박하게 쌓아올린 황토빛깔 돌담장


소쇄원 연지에 비쳐진 하늘의 반영

굵은 대죽통을 통과한 계곡물 일부는

이곳으로 흘러들었다 다시 흘러간다.


여름햇살을 막아주던 애기단풍

발아래 흐르던 맑고 청아한 계곡물소리

푸르름이 짙어진 대숲을 향해불던 바람소리

옛 선조들의 소박한 멋과 풍류를 느껴보며

동화되어 본 시간들

짧지만 긴여운이 되어

소쇄원을 찬찬히 둘러보는 동안은

잠시 더위를 잊은듯 했다.